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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V칼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턱 앞에서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06-2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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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한 매체에 실린 기사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청각 장애를 가진 루벤 씨가 동료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언어 장벽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기를 망설이고, 휠체어를 탄 루스 씨가 교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 곤란을 겪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복음을 듣고 싶고, 공동체와 교제하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혹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이는 ‘문턱’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누구든지 오라’고 외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초청이 과연 모두에게 열린 진정한 환대였을까요, 아니면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제한된 초대장은 아니었을까요? 교회의 문턱은 단지 건축물의 높낮이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수어를 모르는 우리의 무심함,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 없는 주보, 발달장애 아동의 작은 소란을 참지 못하는 우리의 굳은 표정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전과자입니다. 세상 모두가 그를 멸시하고 내쫓을 때, 오직 미리엘 주교만이 그를 따뜻한 저녁 식탁으로 초대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내어줍니다. 심지어 장 발장이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붙잡혔을 때도, 주교는 “내가 준 것”이라며 그를 감싸 안고 더 비싼 은식기까지 쥐어줍니다. 이 조건 없는 사랑과 환대는 평생을 증오와 절망 속에서 살던 장 발장의 영혼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이 됩니다. 미리엘 주교의 집 문턱을 넘는 순간, 장 발장의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미리엘 주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편견과 차별이라는 차가운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벽난로와 수프를 내어주는 곳, 그들의 허물과 상처를 묻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는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누가복음 14:12-14).

오늘, 우리 교회의 문턱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문턱도 들여다봅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접근을 막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지는 않았는지, 나의 편안함과 익숙함을 위해 누군가의 불편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겸손히 성찰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 문턱을 넘어 세상의 낮은 곳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교회는 모두를 위한 진정한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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