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V칼럼] 우리는 상처가 머물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까?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06-25 07:10
본문
새로운 생명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감격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로잔 운동의 한 글은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가 겪는 깊은 고립감, 자신의 과거가 ‘침묵되고 제거되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새 신자에게 이전의 삶과 분리되어 온전히 교회 공동체에 속하라고 가르치지만, 그 가르침이 혹 그들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차가운 칼날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저리 윌리엄스의 동화 ‘벨벳 토끼 인형(The Velveteen Rabbit)’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솜으로 채워진 작은 토끼 인형은 진짜가 되는 것을 꿈꿉니다. 장난감 나라의 늙고 지혜로운 말 인형은 진짜가 되는 비결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진짜가 되는 건 네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그건 너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한 아이가 오랫동안 너를 사랑해주면, 그냥 갖고 노는 게 아니라 정말로 너를 사랑해주면, 너는 진짜가 되는 거야.”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털이 닳고, 실밥이 터지고, 눈이 빠져버린 토끼 인형은 더 이상 번쩍이는 새 인형이 아니었지만, 바로 그 상처와 낡아짐을 통해 ‘진짜’가 되었습니다. 그 낡음은 수많은 사랑의 기억이 새겨진 영광의 흔적이었습니다.
새롭게 신앙을 갖게 된 형제자매들의 과거는 바로 이 벨벳 토끼 인형의 닳아빠진 털과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상처받고, 죄로 얼룩지고, 눈물로 젖었던 그들의 과거는 지워버려야 할 부끄러운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아픔과 절망 속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증언하는 가장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들의 과거를 침묵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서사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상처는 죽음을 이기신 사랑의 증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과연 새 신자들의 ‘상처 입은 과거’가 편히 머물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과거를 서둘러 소독하고 깨끗한 붕대로 감싸 보이지 않게 하려고만 애쓰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서로의 짐을 진다는 것은,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함께 발견해줄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온전한 인격으로 주님 안에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반짝이는 새 인형들만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낡고 해졌지만 사랑으로 ‘진짜’가 된 벨벳 토끼 인형들이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아이의 방과 같은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곳에서 모든 영혼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과거의 상처가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영광의 훈장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매일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저리 윌리엄스의 동화 ‘벨벳 토끼 인형(The Velveteen Rabbit)’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솜으로 채워진 작은 토끼 인형은 진짜가 되는 것을 꿈꿉니다. 장난감 나라의 늙고 지혜로운 말 인형은 진짜가 되는 비결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진짜가 되는 건 네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그건 너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한 아이가 오랫동안 너를 사랑해주면, 그냥 갖고 노는 게 아니라 정말로 너를 사랑해주면, 너는 진짜가 되는 거야.”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털이 닳고, 실밥이 터지고, 눈이 빠져버린 토끼 인형은 더 이상 번쩍이는 새 인형이 아니었지만, 바로 그 상처와 낡아짐을 통해 ‘진짜’가 되었습니다. 그 낡음은 수많은 사랑의 기억이 새겨진 영광의 흔적이었습니다.
새롭게 신앙을 갖게 된 형제자매들의 과거는 바로 이 벨벳 토끼 인형의 닳아빠진 털과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상처받고, 죄로 얼룩지고, 눈물로 젖었던 그들의 과거는 지워버려야 할 부끄러운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아픔과 절망 속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증언하는 가장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들의 과거를 침묵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서사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상처는 죽음을 이기신 사랑의 증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과연 새 신자들의 ‘상처 입은 과거’가 편히 머물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과거를 서둘러 소독하고 깨끗한 붕대로 감싸 보이지 않게 하려고만 애쓰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서로의 짐을 진다는 것은,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함께 발견해줄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온전한 인격으로 주님 안에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반짝이는 새 인형들만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낡고 해졌지만 사랑으로 ‘진짜’가 된 벨벳 토끼 인형들이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아이의 방과 같은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곳에서 모든 영혼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과거의 상처가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영광의 훈장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매일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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