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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 눈물, 복음주의의 양심을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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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복음연맹(WEA)이 UN 인권이사회에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고통에 대해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중요한 행보다. 이는 그동안 특정 정치적, 신학적 프레임에 갇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단선적으로만 바라보던 일부 복음주의 진영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많은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스라엘을 성경 예언 성취의 중심으로 여기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관점이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살아있는 돌’(Living Stones)인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신음과 고통을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과연 균형 잡힌 것인지 심각하게 되물어야 한다. 이스라엘 정착민의 폭력과 군사 작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 중에는 우리의 형제자매인 기독교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눈물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함께 아파해야 할 지체의 고통이다.

예수께서 들려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종교적 정결법이나 다른 중요한 사역과 같은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만이 발걸음을 멈추고 자비를 베풀었다. 예수께서는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오늘날 우리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라는 강도 만난 이웃 앞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사마리아인의 길을 가고 있는가. 지정학적 이해관계나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우리의 눈을 가려, 고통받는 형제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첫 번째 충성은 특정 국가나 민족이 아닌,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아서 6:10)

세계복음연맹의 이번 성명은 복음주의 교회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이에게, 특히 믿음의 가정에 속한 이들에게 정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성경적 책무를 일깨우고 있다. 성지의 눈물을 외면하는 신앙은 결코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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