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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 그러나 무엇을 지킬 것인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14 07:10

본문

‘거룩한방파제’가 순교의 역사를 따라 전국 565km를 횡단하는 국토순례에 나섰다. ‘핏값으로 지켜진 한국교회, 이제는 우리가 지켜낼 차례’라는 구호는 듣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 신앙과 손양원 목사의 용서,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 위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서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그 신앙을 계승하려는 노력은 지극히 마땅하고 귀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순교자들이 목숨과 맞바꾸며 지키려 했던 것은 교회의 건물이거나 조직, 혹은 지상에서의 영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의 정절, 그 자체였다. 그들은 ‘값싼 은혜’가 아닌 ‘값비싼 은혜’를 온몸으로 살아낸 증인들이었다.

20세기 독일의 신학자이자 순교자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요, 공동체 없는 세례이며, 고백 없는 성찬이다. 값싼 은혜는 제자도의 삶이 없는 은혜요, 십자가 없는 은혜이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라고 지적했다. 반면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제자도를 요구한다. 순교자들이 지켜낸 것은 바로 이 ‘값비싼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삶이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지킨다’고 할 때, 그것이 혹 교회의 외형적 위상이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진정으로 교회를 지키는 것은 순교자들처럼 세상의 가치에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 순교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한국교회 전체가 ‘무엇을 지킬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 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단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진정한 방파제는 외부에 쌓는 성벽이 아니라, 각 성도의 마음에 세워지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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