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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의 일치’인가, ‘진리 없는 연합’인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0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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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 카리스마 운동과 복음주의 진영의 연합을 도모하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오늘날 ‘일치’와 ‘연합’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기독교 일치’라는 표어는 얼핏 경건하고 성경적인 목표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신학적 토대를 면밀히 살피지 않는다면 진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이번 연합 운동의 핵심 동력은 ‘카리스마’, 즉 성령의 은사에 대한 공통된 체험이다. 방언, 예언, 치유와 같은 현상적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교리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는 집의 기초보다 인테리어를 먼저 논하는 것과 같이 본말이 전도된 위험한 시도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우리를 신비한 체험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요 16:13)로 인도하는 것이다. 진리를 배제한 채 체험만을 앞세운 연합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작은 시험의 비바람에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역사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1529년, 독일의 마르부르크 성에서 종교개혁의 두 거장인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츠빙글리가 만났다. 신성로마제국의 위협에 맞서 개신교 세력의 정치적, 신학적 연합을 이루기 위한 절박한 자리였다. 15개 신조 중 14개에 합의했지만, 성찬에 대한 이해라는 마지막 교리 앞에서 그들은 끝내 일치하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에 실재로 임재한다는 루터의 입장과, 이를 기념하는 상징으로 본 츠빙글리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이때 루터가 테이블에 ‘이것은 내 몸이니라(Hoc est corpus meum)’라는 라틴어 문장을 새기며 타협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정치적 유익과 형제적 교제보다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결별은 안타까운 역사이지만, 동시에 진리 없는 연합은 공허하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가르쳐준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는 성찬 교리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 교황과 교회의 전통이 아닌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를 갖는다는 원칙, 마리아 숭배와 성인 공경 문제 등은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복음의 본질이다. 이러한 간극을 덮어둔 채 ‘성령’의 이름으로 연합을 시도하는 것은 성령을 오도하는 행위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한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요한이서 1:9-11). 참된 교회 연합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의 무분별한 포옹이 아니라, 동일한 복음과 진리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으로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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