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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단, 아벨의 피를 외면하는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2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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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학대의 가해자가란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화려한 만찬을 열어 성공을 자축하며, 여전히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다는 소식은 경악을 넘어 비통함을 자아낸다. 그 이면에서 피해자들은 신앙과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고통 속에 홀로 신음하고 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 가인과 아벨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다.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시기와 분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 죽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을 때, 그는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오늘날 영적 학대 가해자들이 세운 새로운 강단은 바로 이 가인의 제단과 같다. 그들의 화려한 예배와 수려한 설교, 선한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포장지 아래에는 짓밟힌 영혼, 아벨의 피가 흐르고 있다.

더욱 통탄할 일은 이러한 가인의 제단을 묵인하고 때로는 동조하는 교회 지도자들과 공동체의 현실이다.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용서’와 ‘사랑’이라는 성경적 가치를 오용하여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교회의 명예와 안정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아벨의 핏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결코 고통받는 자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영적 학대 피해자의 고통은 특정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아픔이며 죄악이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싸매어 주며,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권징과 회개의 열매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회복해야 할 최소한의 공의다. 가인의 제단에 차려진 제물을 탐하는 대신, 땅에서부터 울부짖는 아벨의 핏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세기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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