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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라는 우상, 시간을 좀먹는 죄악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07 07:10

본문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의 본질이 '두려움'에 있다는 진단은 매우 날카롭다. 이는 단순히 시간 관리의 실패를 넘어, 신앙의 핵심을 관통하는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하기를 주저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며 시간을 허비할 때, 그 중심에는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는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평가일 수도, 실패의 가능성일 수도, 혹은 미지의 미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 모든 '두려움'의 대상들은 결국 하나님이 계셔야 할 마음의 보좌를 찬탈한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불안의 개념』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Angst)'을 '자유의 현기증'이라 묘사했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오히려 인간을 마비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앙 안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현상 역시 이와 유사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함께 시간을 선물로 주셨지만, 우리는 그 자유를 사용하여 믿음의 선택을 하기보다 실패의 가능성 앞에서 주저앉는 영적 현기증을 경험한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발로이며, 시간을 좀먹는 명백한 죄악이다.

성경은 두려움의 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선포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거짓된 두려움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가로막으며, 거룩한 목적을 향한 자기 절제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시간 낭비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거부하고 두려움이라는 우상에게 우리의 시간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더 나은 시간 관리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의 우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신앙만이 사람과 세상을 향한 모든 거짓된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순간을 담대하게 살아내는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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