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고통, 신앙의 부재인가 질병인가: 교회의 응답을 촉구한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2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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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독교 내에서 정신 건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관련 자료들이 소개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그동안 한국 교회가 성도들의 정신적 고통 문제를 얼마나 소홀히 다루어 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일부 보수 신앙 진영에서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 질환을 ‘믿음이 약해서’, ‘기도가 부족해서’, 혹은 ‘사탄의 역사’로 치부하며 모든 책임을 개인의 영성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편협한 시각은 고통받는 성도들에게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더하고, 그들을 전문적인 도움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잔인한 결과를 낳았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질병으로 인정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목회적 돌봄이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전인격적 존재이며,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살아간다. 정신 질환 역시 신체적 질병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생물학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뇌 기능의 문제일 수 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의학과 상담 등 일반은총의 영역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성숙한 신앙의 태도이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렸던 찰스 스펄전은 평생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동굴 속 박쥐처럼 내 영혼에 깃든 의심과 절망”, “숨 막히는 어두운 구름”이라고 표현하며 솔직하게 토로했다. 당대 최고의 설교가였던 그조차도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신 질환이 결코 신앙의 깊이나 영적 수준과 비례하지 않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스펄전의 고백은 오늘날 정신적 고통을 겪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며, 동시에 이를 영적 나태로 매도하는 교회에 준엄한 경고를 던진다.
교회는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금기시하거나 영적인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고통받는 영혼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며,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쉴 수 있는 ‘영적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시편 기자의 절규처럼,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영혼의 실존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믿음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그 소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돕는 진정한 의미의 ‘성소’(Sanctuary)가 되어야 할 책임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질병으로 인정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목회적 돌봄이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전인격적 존재이며,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살아간다. 정신 질환 역시 신체적 질병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생물학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뇌 기능의 문제일 수 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의학과 상담 등 일반은총의 영역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성숙한 신앙의 태도이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렸던 찰스 스펄전은 평생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동굴 속 박쥐처럼 내 영혼에 깃든 의심과 절망”, “숨 막히는 어두운 구름”이라고 표현하며 솔직하게 토로했다. 당대 최고의 설교가였던 그조차도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신 질환이 결코 신앙의 깊이나 영적 수준과 비례하지 않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스펄전의 고백은 오늘날 정신적 고통을 겪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며, 동시에 이를 영적 나태로 매도하는 교회에 준엄한 경고를 던진다.
교회는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금기시하거나 영적인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고통받는 영혼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며,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쉴 수 있는 ‘영적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시편 기자의 절규처럼,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영혼의 실존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믿음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그 소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돕는 진정한 의미의 ‘성소’(Sanctuary)가 되어야 할 책임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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