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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라는 모래 위에 세운 연합의 집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0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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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과 복음주의 카리스마 운동의 일치 추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연합’이라는 감미로운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저를 파고들면, 신학적 진리가 아닌 주관적 체험을 접착제 삼으려는 위험한 시도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는 견고한 반석이 아닌, 유동하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

이 운동은 칭의, 성찬, 마리아론, 교황의 권위 등 종교개혁의 근간을 이루었던 핵심 교리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대신 ‘성령 안에서의 체험’이라는 공통분모를 앞세워 신학적 간극을 뛰어넘으려 한다. 그러나 성령은 결코 스스로 기록한 말씀의 진리와 배치되게 역사하지 않으신다. 진리를 떠난 영적 체험은 신기루일 뿐이며, 그 끝은 혼란과 변질로 귀결될 뿐이다.

1529년, 독일의 마르부르크 성에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마주 앉았다. 그들은 가톨릭의 위협에 맞서 개신교 세력의 연합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15개 신조 중 14개에 합의했지만, 성찬의 본질에 대한 마지막 한 조항에서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츠빙글리가 눈물로 동맹의 손을 청했을 때, 루터는 “당신은 우리와 다른 영을 가졌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정치적 유익과 감정적 화합보다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마르부르크 회담의 결렬은 표면적 일치보다 신학적 진실성이 개혁주의 신앙의 생명선임을 보여주는 통렬한 역사적 교훈이다.

오늘날 제기되는 ‘하나님의 꿈’이라는 이름의 연합 운동은 바로 이 생명선을 끊으려는 시도이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유일한 복음을 희석시키고, 결국 다른 복음의 길을 터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교회는 감정적이고 체험적인 일치라는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교회의 연합은 인간의 꿈이나 계획이 아닌,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사도적 가르침 위에서만 가능하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서슬 퍼런 경고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말씀이 오늘날 모든 종류의 종교 혼합주의와 타협주의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선언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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