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제단에 선 총대주교, 교회의 길을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30 07:10
본문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자국 군인들의 죄를 씻어준다고 선언하며 전쟁을 축복하는 모습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가 국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고,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는 권력의 확성기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4세기경, 교회가 세상 권력과 야합하며 나타났던 '카이사로파피즘(Caesaropapism)'의 망령을 21세기에 다시 소환한다.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어 교회를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어두운 역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키릴 총대주교의 관계 속에서 섬뜩하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역사 속에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있다. 390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데살로니가에서 학살을 자행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향해 성찬 참여를 금지하고 공개적인 회개를 요구했다. 그는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황제 역시 교회 안에 있는 것이지, 교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세상의 권세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교회의 영적 권위를 분명히 했다. 황제는 결국 수개월간의 참회 끝에 주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의 권력 위에 있음을 교회가 선포한 위대한 순간이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교회의 최우선 순위는 세상 나라의 번영이나 특정 정치 체제의 유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칠 때, 그 빛과 소금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키릴 총대주교의 사례는 한국 교회에 보내는 서늘한 경고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신앙의 원칙을 저버리고, 이념의 편에 서서 복음의 보편성을 훼손하려는 유혹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한다. 교회는 카이사르의 제단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야 할 거룩한 사명이 있음을 뼈에 새겨야 한다.
이러한 모습은 4세기경, 교회가 세상 권력과 야합하며 나타났던 '카이사로파피즘(Caesaropapism)'의 망령을 21세기에 다시 소환한다.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어 교회를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어두운 역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키릴 총대주교의 관계 속에서 섬뜩하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역사 속에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있다. 390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데살로니가에서 학살을 자행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향해 성찬 참여를 금지하고 공개적인 회개를 요구했다. 그는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황제 역시 교회 안에 있는 것이지, 교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세상의 권세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교회의 영적 권위를 분명히 했다. 황제는 결국 수개월간의 참회 끝에 주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의 권력 위에 있음을 교회가 선포한 위대한 순간이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교회의 최우선 순위는 세상 나라의 번영이나 특정 정치 체제의 유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바칠 때, 그 빛과 소금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키릴 총대주교의 사례는 한국 교회에 보내는 서늘한 경고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신앙의 원칙을 저버리고, 이념의 편에 서서 복음의 보편성을 훼손하려는 유혹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한다. 교회는 카이사르의 제단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야 할 거룩한 사명이 있음을 뼈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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