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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과 소금, 교회의 본질을 다시 묻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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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당도한 소식들은 한국 교회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동시에 비추는 다채로운 프리즘과 같다. 영등포 광야에서 노숙인의 손을 잡는 따뜻한 온기가 있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목회자의 청년 시절을 스크린으로 추억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유럽에서는 복음 전파를 위해 최첨단 미디어 기술을 연마하는 열정이 타올랐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의 존엄을 근본부터 흔드는 안락사 합법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또한, 신앙을 특정 정치 이념과 동일시하려는 위험한 시도에 대한 경고음도 들려왔다.

이 파편적인 소식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세계성시화운동본부가 보여준 섬김은 교회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교회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낮고 신음하는 이웃의 곁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초대교회가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전염병이 창궐할 때 병자들을 돌보고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었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가 그의 저서 『기독교의 발흥』에서 논증했듯, 기독교의 폭발적 성장은 교리적 탁월함뿐만 아니라, 이타적 사랑의 실천이라는 사회적 증거에 기반했다.

그러나 교회는 동시에 두 가지 유혹에 직면한다. 하나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려는 유혹이며, 다른 하나는 세상의 권력과 손을 잡으려는 유혹이다. 한 목회자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가 주는 감동은 귀하지만, 그것이 과거에 대한 향수나 우상화로 변질될 때 복음의 역동성은 힘을 잃는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을 ‘보수주의’라는 정치적 틀에 가두려는 시도는 복음의 초월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좌나 우, 보수나 진보라는 인간의 이념으로 담아낼 수 없는 영원한 진리이다.

네덜란드에서 들려온 12세 미만 아동 안락사 소식은 이 시대가 얼마나 깊은 영적 어둠 가운데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증거다. 인간이 생명의 주인이 되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생명을 끊는 것을 ‘권리’라고 주장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바로 이때, 교회는 세상의 소금으로서 부패를 막고 빛으로서 어둠을 밝히는 본질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3-14)

한국 교회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기념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섬김과 진리 선포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유럽의 미디어 전문가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듯, 우리 역시 시대의 언어로 복음의 본질을 전해야 한다. 그 본질은 영등포의 밥 한 그릇에 담겨 있고, 생명의 존엄을 외치는 선지자적 목소리에 담겨 있다. 교회의 유일한 영광은 십자가이며, 유일한 권력은 섬김이다. 이 본질을 회복할 때,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이 땅의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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