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 시대의 빛으로 서는 교회의 본질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22 07:10
본문
오늘 한국 사회와 교회 앞에 놓인 소식들은 희망과 경고를 동시에 담고 있다. 한편에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국가적 난제인 저출생 문제에 대한 실제적 대안을 제시하며 생명을 잉태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고, 서울역 광장에서는 이름 없는 교회가 소외된 이들을 섬기며 세상 속으로 들어간 복음의 능력을 증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신앙이 특정 정치 이념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과 세속 법정이 신앙 전수의 자유를 억압하는 냉혹한 현실이 전해진다. 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받았으나, 세상의 방식에 물들어서는 안 되는 거룩한 공동체이다. 교회의 힘은 정치권력이나 경제력, 사회적 영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복음의 능력에서 나온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동지들인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는 이 진리를 삶으로 증명했다. 그들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기보다, 깊은 신앙과 기도에 뿌리내린 양심으로 수십 년간 노예제 폐지를 외쳤다. 그들의 동력은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성경적 진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들은 사회개혁이라는 열매를 맺었지만, 그 뿌리는 언제나 복음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도전도 마찬가지다. 저출생이라는 시대의 아픔 앞에서 교회는 생명을 존중하고 양육하는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례는 교회가 세상의 제도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 성경적 가치관에 기반한 대안적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증거다. 또한, 거리의 예배는 교회가 높은 담장을 허물고 고통받는 이웃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웅변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길이다.
반면, 복음을 특정 정치적 프로젝트와 동일시하려는 유혹은 교회의 순수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복음은 좌나 우, 보수나 진보라는 인간의 이념적 틀에 갇힐 수 없는 초월적 진리다. 교회가 특정 이념의 확성기로 전락할 때, 복음은 생명의 능력을 잃고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만다. 총회의 주제처럼 진정한 ‘부흥’은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이처럼 복음의 본질을 굳게 붙들고 시대의 아픔에 응답하며, 모든 이념적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 구조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 땅에 구현하는 대안적 공동체로 서야 한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14절은 말씀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교회가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지지 않으려면, 생명을 낳고(출산 장려), 약자를 섬기며(광장 예배), 오직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히 서는(이념적 중립) 본질적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속에서 교회가 다시 빛을 발할 유일한 길이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받았으나, 세상의 방식에 물들어서는 안 되는 거룩한 공동체이다. 교회의 힘은 정치권력이나 경제력, 사회적 영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복음의 능력에서 나온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동지들인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는 이 진리를 삶으로 증명했다. 그들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기보다, 깊은 신앙과 기도에 뿌리내린 양심으로 수십 년간 노예제 폐지를 외쳤다. 그들의 동력은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성경적 진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들은 사회개혁이라는 열매를 맺었지만, 그 뿌리는 언제나 복음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도전도 마찬가지다. 저출생이라는 시대의 아픔 앞에서 교회는 생명을 존중하고 양육하는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례는 교회가 세상의 제도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 성경적 가치관에 기반한 대안적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증거다. 또한, 거리의 예배는 교회가 높은 담장을 허물고 고통받는 이웃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웅변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길이다.
반면, 복음을 특정 정치적 프로젝트와 동일시하려는 유혹은 교회의 순수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복음은 좌나 우, 보수나 진보라는 인간의 이념적 틀에 갇힐 수 없는 초월적 진리다. 교회가 특정 이념의 확성기로 전락할 때, 복음은 생명의 능력을 잃고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만다. 총회의 주제처럼 진정한 ‘부흥’은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이처럼 복음의 본질을 굳게 붙들고 시대의 아픔에 응답하며, 모든 이념적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 구조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 땅에 구현하는 대안적 공동체로 서야 한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14절은 말씀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교회가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지지 않으려면, 생명을 낳고(출산 장려), 약자를 섬기며(광장 예배), 오직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히 서는(이념적 중립) 본질적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속에서 교회가 다시 빛을 발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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