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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분별, 그리고 소망의 파수꾼으로 서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9-03 07:10

본문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세 편의 소식이 우리 앞에 놓였다. 하나는 피로 새겨진 신앙의 유산을 기억하라는 과거의 외침이고, 다른 하나는 쾌락의 연기에 길을 잃은 현재의 자화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 앞에서 영원한 소망을 붙들라는 미래를 향한 권고다. 이 세 가지 풍경은 오늘날 교회가 서 있는 영적 좌표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스페인 내전의 포화 속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개신교 여성 안젤라의 이야기는, 그녀의 손자 파코 니에블라의 말을 통해 우리 심장에 박힌다. “기억을 잃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 그렇다. 한국 교회는 박해의 잿더미 위에서 기도의 눈물과 순교의 피로 세워진 공동체다.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와 손양원 목사의 사랑이 먼 옛이야기가 될 때, 교회의 정체성은 모래 위의 집처럼 위태로워진다. 안젤라의 푸른 눈과 붉은 심장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억하며, 어떤 정체성으로 서 있는가.

동시에 우리는 콜로라도의 미술 전시가 고발하는 대마초 합법화의 그늘을 직시해야 한다. ‘진보’와 ‘자유’라는 미명 아래 허용된 쾌락이 정신 건강의 파괴와 사회적 비용의 증가라는 씁쓸한 열매를 맺는 현실은, 죄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시대의 영적 무지를 폭로한다. 교회는 세상의 유행에 편승하여 진리의 기준을 흐리는 안일함에서 깨어나야 한다. 예언자적 목소리로 시대를 분별하고, 거짓된 자유가 아닌 진리 안에서의 참된 자유를 선포할 책무가 교회에 있다.

영국 기독교 축제 현장에서 발생한 목회자의 비극적 죽음은 삶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숙연히 돌아보게 한다. 환희와 찬양이 가득한 곳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의 생명이 한낱 아침 안개와 같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교회는 소망 없는 이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는다.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문임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노래하며,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로 부름받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의 흥망성쇠는 외부의 도전(challenge)에 대한 창조적 소수의 응전(response)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속주의의 거센 도전 앞에 서 있다. 과거의 신앙 유산을 ‘기억’하고, 현재의 시대상을 성경적 진리로 ‘분별’하며,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창조적 소수, 곧 깨어있는 파수꾼으로 서야 할 때다. 교회의 응전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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