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와 신음하는 골방, 교회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는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22 07:10
본문
현대 사회는 영웅을 갈망한다.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골망을 흔드는 스포츠 스타, 스크린을 장악하는 유명 배우, 막대한 부를 이룬 기업가에게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에 열광하고, 그들과의 짧은 만남을 영광으로 여기며, 그들의 삶을 흠모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세태의 그림자는 한국 교회 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교회의 강단은 성공 신화의 간증으로 채워지고, 성도들은 세상의 ‘최고 선수’들처럼 가시적인 성공을 이룬 인물들을 신앙의 모델로 삼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화려한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는 동안, 정작 돌보아야 할 양 떼가 고통 속에 신음하는 골방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기독교계에서 정신 건강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울과 불안, 공황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홀로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신앙의 나약함이나 영적 문제로 치부하는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교회는 이들의 신음을 외면한 채, 세상의 성공이라는 헛된 우상을 좇으며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을 잊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는 교회가 나아갈 길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녀는 영국 사교계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 영광을 뒤로하고 크림 전쟁의 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영웅을 향한 환호가 아니라, 피와 오물로 가득한 야전 병원의 참혹한 현실이었다. 그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등불 하나에 의지해 죽어가는 병사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마지막을 위로했다. 세상은 그녀를 ‘등불을 든 여인’이라 부르며 칭송했지만,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고통의 현장을 지켰다는 데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세상의 무대에서 내려와, 신음하는 영혼들이 있는 골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공의 복음이 아닌,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최고 선수’를 내세워 교회의 외형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상처 입고 지친 ‘지극히 작은 자’의 손을 잡아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0). 교회의 시선이 세상의 영광이 아닌, 주님의 마음이 머무는 가장 낮은 곳을 향할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화려한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는 동안, 정작 돌보아야 할 양 떼가 고통 속에 신음하는 골방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기독교계에서 정신 건강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울과 불안, 공황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홀로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신앙의 나약함이나 영적 문제로 치부하는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교회는 이들의 신음을 외면한 채, 세상의 성공이라는 헛된 우상을 좇으며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을 잊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는 교회가 나아갈 길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녀는 영국 사교계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 영광을 뒤로하고 크림 전쟁의 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영웅을 향한 환호가 아니라, 피와 오물로 가득한 야전 병원의 참혹한 현실이었다. 그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등불 하나에 의지해 죽어가는 병사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마지막을 위로했다. 세상은 그녀를 ‘등불을 든 여인’이라 부르며 칭송했지만,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고통의 현장을 지켰다는 데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세상의 무대에서 내려와, 신음하는 영혼들이 있는 골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공의 복음이 아닌,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최고 선수’를 내세워 교회의 외형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상처 입고 지친 ‘지극히 작은 자’의 손을 잡아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0). 교회의 시선이 세상의 영광이 아닌, 주님의 마음이 머무는 가장 낮은 곳을 향할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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